참고자료 및 정년퇴임

2021.8.30(월) 윤은상 친구의 여행기

촌집목련 2021. 8. 30. 21:14
2021.8.30.(월) 윤은상 친구의 글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떠나라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다리가 떨릴 때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힘이 있을 때 가야지 힘이 없으면 여행도 못가는 거다. 세상에 가장 허망한 것은 바로 나중에 이다. 무엇인가 하고 싶으면 바로 지금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은 그 자체가 선물이다. 오늘은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암 환자가 평생 돈을 모아도 젊었을 때 여행을 다니지 못한 걸 너무 억울해 합니다. 누가 나를 행복해 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가 알아서 사 먹고 내가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가보라. 지금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은 없다. 지금이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다. 오늘부터 나중이라는 말은 던져 버리고 지금 당장 실천하고 행동하며 기쁨을 누려야한다. 지금 가보고 싶은 곳에 마음껏 여행을 하리라. 아무리 무더위가 심하고 코로나 19가 끝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집안에 누워 있는 것보다 좀 더 건강하고, 움직일 수 있을 때, 먼 여행을 떠나고 싶다.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자녀들이 세종시와 파주시에 머물고 있기에 마음껏 떠날 수 있어 이 또한 행복이라 생각해 본다.

2021.8.2일 아내가 갑자기 세종의 아들 병우 집에 다녀오자고 했다. 마치 며느리가 시온이의 어린이집 방학이라 광주 쌍촌동 친정집에 머물고 있었다. 아내는 아들이 혼자 밥을 제대로 먹고 있는가 걱정이 되어 세종시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8.6일쯤 파주에 올라갈까 했는데 아내가 갑자기 세종시를 가자고 해서 처음에는 그날 갔다 다음날 내려올까 했는데 아내가 어쩔 줄 모르니 여장을 챙겨서 올라가자고 했다. 아내와 함께 부식품과 필요한 용품을 준비하여 오후 2시쯤에 출발하여 5시쯤 세종시에 도착했다. 아들도 퇴근하고 6시30분쯤 귀가하여 함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다음날 나는 평소 오르던 아파트 뒷산을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다. 날씨는 몹시 무더웠으나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평소 나만이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가곡도 부르고 명상도 즐기며 우거진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커다란 청솔 모한마리가 한가로이 소나무 사이를 오가는 바라보면서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그 때 마치 윤영기 선배로부터 전화 와서 내가 세종시에 와 있다고 하니 서울에 사는 주동이 선배가 대전 유치원에 근무하고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주동인 선배는 지방공기업을 퇴임하고 유치원 에듀파인을 담당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홀로 내려와 대전에서 지내고 있다 하였다. 내가 먼저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으나 나중에 전화가 와 한번 만나자고 했더니 다음날 만나자고 했다. 다음날 만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알려 달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낮에는 유치원공사 감독관계로 저녁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만나려 대전에 가려고 하였는데 오후에 다시 문자가 왔다. 저녁에는 이사장과 저녁 약속을 했기에 책자를 보내달라고 유치원 주소를 알려주었다.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선배님인데 아쉽지만 책자만 보내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들을 통해 책2권을 유치원사무실에 보내 월요일에 잘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꼼꼼히 잘 읽고 후기를 전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다음날은 세종시에 살고 있는 김희군 전)국장님에게 연락하자 12시경에 집근처에 오셔서 함께 동승하여 세종호수 공원 앞에 있는 메밀 국수집에서 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20분쯤 기다리고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정공섭 전)국장님 사모님과 딸, 처가 형제분들이 오셔서 함께 식사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김전)국장님께서 식사대를 모두 지불하고 근처 찻집으로 이동하여 차를 나누며 최근 출간한 책자를 건 내 주었다. 얼마 후에 정국장님이 김국장님에게 고맙다는 전화가 와서 나에게도 바꿔 주어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뒷산을 한 바퀴 돌면서 집에 들아 와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돼지불고기식당에서 먹었다.
2021.8.4. 아내와 함께 동학사 계곡에서 발도 담그며 함께 식사를 하고 내려올까 하고 동학사 입구까지 다녀왔으나 주차장에서 계곡까지 거리가 멀다하며 아내가 돌아가자고 해서 모처럼 나온 여행이라 옥천에 있는 육 영수 여사님의 생가와 정지용 작가의 생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옥천으로 빠져 나갔다. 교통이 좋아 그리 멀지는 않았다. 먼저 정지용 생가를 방문했다. 현대시의 시성으로 불리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140여 평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문학관이 있어 관람하면서 시인의 문학 혼을 체험할 수 있었다. 소박한 초가집에 박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는 지극히 소박하고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육영수여사의 생가는 1600연대의 조선시대 사대부 건축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곳으로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의 삼정승이 살았다하여 교동집이라 불리며 옥천지역의 명가이다. 1918년 육종관(부친)이 이집을 매입하여 1925년11.29일 육영수여사가 태어나 결혼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1969년 전면적인 개. 보수를 하면서 원형이 훼손되었고 육 여사 서거이후 방치되어오다가 1999년에 철거 하여 2004년에 복원하여 2011.5.11.에 개관되었다. 육 여사님의 부모님이 거주하는 안채와 주로 손님접대 공간인 사랑채와 그리고 위채, 아래채가 있고 연당사랑은 연못 후면에 배치된 사옥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앞에 있는 넓은 연꽃 방죽에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육영수 여사님은 학창시절 재봉과 수예, 요리에 남다른 솜씨를 발휘하였고 영부인으로 계실 때에도 청소년 육성에 많은 열정을 쏟았으며 양지회 활동을 통해 소외된 서민들을 위로하는 등 서민들과 친근했던 이미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인근에 옥천 전통문화체험관이 있어 편의시설, 숙박시설 등이 들어서 전통한옥에서 숙박하면서 다도, 공예 전통 놀이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관람을 마치고 인근에서 식사를 하고 세종시로 돌아왔다.
2021.8.5일 아들이 휴가를 얻어 월악산 계곡으로 피서를 가자고 했다. 나는 월악산은 두 시간 이상 소요되어 평소 가고 싶었던 화양계곡에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하여 화양계곡을 가기로 했다. 아들이 운전을 하고 화양계곡을 향했다. 가던 도중 2차선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는 상대방이 차선을 이탈하여 달라 드는 바람에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하였다. 아들이 순간적으로 방어운전을 하여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찔한 순간이었다. 청주, 괴산은 화양동, 선유동, 쌍곡, 사담계곡 등 갈 곳이 많아 그곳에 사는 분들은 복을 받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산의 속리산 자락에 있는 화양계곡은 송시열의 향기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만덕묘와 화양서원, 화양구곡이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5,000원의 주차료를 지불하고 주차를 하고 계곡아래를 바라보니 수많은 피서객들이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공원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만덕묘와 화양서원을 향했다. 안내소에서 30분쯤 올라가니 우암 송시열선생의 화양동 서원 뒤엔 만덕묘라는 중국황제 위패를 모신 곳이 있었다. 만덕묘는 우암 송시열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에 대해 '제조지은'의 의리를 다하고자 세운 사당이다. 나는 화양구곡을 관람하기 위해서 보도블록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제일 먼저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나 경관이 하늘을 떠받치듯 한다는 제1곡 ‘경천대’를 바라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제2곡은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은 물이 바위와 함께 어울려져 정말 맑고 아름다웠다. 송시열 선생이 효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새벽 마다 통곡하였다는 흰빛의 바위 ‘읍궁암’ 계곡에는 물이 절절 흐르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물결 아래로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흐른다는 ‘금사담’과 계곡 건너편에 송시열이 제자를 가르쳤다는 ‘암서재’ 라는 정자가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다. 많은 피서객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친한 벗과 더불어 하룻밤을 지새우며 옛 선현들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구름을 찌를 듯한 ‘능운대 ’와 밤하늘의 별을 관찰한다는 ‘첨성대’도 바라보니 장관이었다. 열 길이나 되는 너른 바위가 꿈틀 거리고 용을 닮았다는 ‘와룡암’를 지나 낙랑 장송이 모여 있는 언덕 아래로 배각이 모여 들였다는 ‘학소대’에 이르렀다. 한 참 더 올라가니 드디어 마지막으로 흰 바위가 티 없는 옥과 같다하는 ‘파천’까지 올라갔다. 파천에 올라가보니 맑은 물에 바위가 하얗게 씻기어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일거에 풀리는 듯 했다. 참으로 좋은 계곡에 잘 왔구나 생각하고 천천히 주차장 계곡까지 내려와 가족과 함께 발을 담그고 얘기 나누며 피서를 즐겼다. 화양계곡은 너무 조용하여 혼자 산책하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길도 원만하고 보도블록으로 잘 포장되어 유모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아들내외와 함께 오르고 싶었다. 간단하게 도시락을 준비하여 돗자리를 계곡 어느 곳에나 펴면 그곳이 지상낙원이 아니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와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너무 좋은 계곡이었다.
다음날은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던 공동신 친구가 머물고 있는 충주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 책을 전달할까 망설였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대신에 보은에 있는 속리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입구에 정이품 소나무가 있었다. 조선 세조 때 세조가 소나무 때문에 이곳을 지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가 가지를 올려서 세조를 이동하게 했다는 소나무인데 세조가 정이품의 벼슬을 내려서 정이품 소나무가 되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법주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법주사를 향해 걸어갔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세조길에 이르니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까지 어울려 기분 좋게 법주사까지 올라갔다. 세조가 지나간 길이라 세조길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드디어 법주사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법주사 경내에는 높이가 33미터에 달하는 청동미륵불상이 먼저 눈에 뛰었다.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법주사의 대표유물은 팔상전이었다.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탑인데 전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목탑이다. 5층으로 지어진 목탑인데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목탑 안에는 부처의 일생에서 중요한 여덟 가지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것이 팔상도이기에 팔상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대응보전도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의 큰 규모로 되어 있었다. 사찰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시 세조길 측면 길로 내려왔다. 속리산계곡 아래에 다다르니 수많은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면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이왕에 왔기에 문장대 탐방로와 천왕봉 신선대, 비로봉까지 오르고 싶었으나 날씨도 덥고 시간도 허락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 채 곧 바로 세종시를 향하였다.
토요일에 파주에 올라갈까 했는데 토요일에 혜경이 직장동료들이 아이파크 집을 방문한다하여 일요일 12시에 파주를 향해 출발했다. 평상시면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주말이라 4시간 20분정도 걸렸다. 파주에 도착하여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었다.
8.10(수요일)에는 윤영기 선배와 양평에 있는 규택이 친구 집을 방문하기 위해 08시30분에 파주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양재동 말죽거리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던 영기선배의 차를 타고 잠실 농산물시장에서 수박을 사서 양평에 있는 규택이 친구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양평에 가던 도중에 한번 가고 싶었던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의 마재 마을에 들러 다산 생가와 묘지, 전시실을 관람하고 양수리(두물 머리)까지 구경하고 규택이 집에 2시쯤에 도착했다. 규택 친구는 양평에 있는 전원주택을 아름답게 가꾸며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심시간에는 양평에서 제일 유명한 맛 집에서 막국수와 편육 2개, 소주3병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규택이 집에 가 보니 규철이 형 내외분이 오셔서 함께 과일과 차 한 잔을 하면서 옛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오후4시30분 쯤 작별 인사를 하고 송창식가수가 머물고 있는 퇴존 청진암을 방문하기 위해 북한강 물길 따라 아름다운 북한강을 구경하면서 차분히 퇴촌을 향하던 중에 승용차가 갑자기 도로에서 멈추게 되어 부득이 견인차를 의뢰하고 나는 버스를 타고 양재에 내려 광역버스를 타고 파주에 도착했다.
수요일 하루는 집에서 쉬면서 호수공원까지 가벼운 운동을 했다.
목요일은 혜경이가 휴가를 얻어 강원도 속초를 함께 여행하자고 했다. 우리를 위해서라면 정성을 다하는 사랑스런 딸이 너무 고마웠다. 아침 9시경에 출발하여 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오후 1시쯤 속초에 도착하여 속초해수욕장을 방문하였다. 해수욕이 금지되었으나 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아름다운 동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태풍의 영향인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동해안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정심을 위해 청초호 인근에 있는 물회집으로 향했다. 혜경이가 예약했지만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아 30분쯤 기다려 식당으로 입실하였다. 식당은 크고 청결하고 손님이 많았다. 우리는 청초호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물회 2인분, 전복죽 1인분 오징어 순대 1인분을 주문했다. 물회에는 많은 량의 회와 전복이 들어 있었고 1인분가격이 23,000이었으나 식단이 좋아 돈이 아깝지 않았다. 전복죽도 19.000이었으나 역시 너무 잘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속초타워로 올라가서 속초시내를 관람하였다. 타워에 올라가니 속초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청초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사진도 찍고 차분히 속초시내를 구경하였다.
속초타워에서 내려와서 양양에 있는 낙산사에 갔다. 먼저 의상대로 갔다. 낙산사는 화재로 산과 건물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의상대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그나만 다행이었다. 의상대 이르니 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홍련암과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걸어서 해수관음상을 구경하고 천천히 내려와 경내를 빠져나와 속초 시장에 들어가 오징어, 복숭아, 저녁에 먹을 벌집삼겹살도 샀다. 시장에는 너무 인파들이 몰려들어 코로나 감염이 염려 되었다.
우리는 시장에서 나와 숙소가 있는 설악산 콘도에 도착하여 편히 쉬었다. 그리고 저녁은 숙소에서 가족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즐겼다. 아침에는 집에서 가져온 찬거리로 간단하게 조반을 하고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설악산에 입장했다. 입장료가 1인당 11,000원이었다. 가을 같으면 보통 4시간 이상은 기다려야한다 했으나 20분쯤 기다리고 간단한 코로나 방역조치를 끝내고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많은 인파들과 함께 케이블카에 오르니 거대가 울산바위와 신흥사, 속초시내와 흐르는 천, 기암괴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외설악이라 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케이블카에서 내려 권금성을 향해 올라갔다. 권금성에 올라 외설악을 바라보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과연 설악산은 금강산 다음가는 명산임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외설악을 이곳저곳 감상하고 하산하여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 숲을 향했다. 가는 길에 알프스 터널과 같은 기린 터널과 내린 천을 따라 깊은 산중으로 향했다. 드디어 예약한 식당에서 비빔 막국수와 감자전을 먹고 자작나무 숲을 다시 향했다. 원대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무료로 주차하고 숲길을 향했다.
강원도 인제하면 가고 싶은 여행지는 단연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 숲이다. 사계절 가볼만한 곳으로 자작나무이다. 숲을 조성하기 전에는 소나무 숲이었으나 솔잎혹파리 피해로 벌채한 후 1989-1996에 걸쳐 약70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어 관리하다가 2008년부터 유아체험 숲으로 운영관리하면서 이국적인 풍경이 온 오픈라인을 통해서 알려졌다. 입구로부터 자작나무가 밀집된 곳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1시간이상 걸어야 했다. 적어도 3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을 만날 수 있다. 안내소에서 안내를 받고 왼쪽으로 원도일대 2.7킬로미터 약 1시간 걸어 탐방코스 1,2킬로미터로 40분정도 자작나무 숲을 오릅니다. 그리고는 전망대, 원두막, 야외무대, 포토존이 있는 숲에서 머물다가 원도 임도로 내려오는데 그 길이 3.2킬로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하였다. 그래서 여름에는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하였다. 우리는 숲길을 1시간쯤 걸었다. 숲이 아름답게 잘 가꾸어졌으나 자작나무숲은 아니었다. 신작로 길을 걷노라면 소나무 숲, 편백 숲, 가끔 자작나무숲이 보인다. 2킬로쯤 걸으니 자작나무 숲으로 안내했다. 드디어 평길에서 등산로로 바뀌었다. 혹시 자작나무 숲이 있는가하여 이곳까지도 어렵게 왔는데 무더위에 산을 다시 올라가야하니 조금 힘이 들었다. 나는 평소 등산을 자주 해왔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으나 아내와 딸이 염려되었다. 천천히 올라오라하면서 나 혼자 먼저 산을 향했다. 가던 길은 계곡에 물이 흐르고 중간에 목공 휴계소가 있었고 그곳에도 작은 자작나무 숲이 있어 쉼터 역할을 했다. 그곳에서 30분쯤 더 오르니 자작나무 숲이 이어졌다. 시베리아나 북유럽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숲을 인제에서 볼 수 있다니 보고 너무 환상적인 숲이 전개 되었다.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위로 자작나무 데크길이 이어졌다. 힘들게 올라왔지만 펼쳐지는 아름다운 광경에 피로가 확 풀리고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고생에서 올라온 보람이 있구나하며 만족 해 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진도 찍으며 포즈도 취하며 산림욕을 만끽했다. 이곳까지 어렵게 올라온 관광객들도 사진도 찍고 매우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내는 무릎이 좋지 않아 여러 가지로 어려웠으나 올라와서 무척 만족해하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이처럼 행복도가 높은 줄을 몰랐다. 우리는 주차장에 내려가던 길에 송이와 표고를 교접하는 송고버섯을 조금 사가지고 주차장에 내려와 차와 물을 함께 마시고 파주를 향했다. 신록이 온통 덮힌 강원도의 산야는 보는 것만으로 눈의 피로와 심신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우리는 잣으로 유명한 가평 휴계소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파주를 향했다. 가던 길에 차량의 병목현상이 심했으나 파주 자유로에 진입하니 차량소통이 원활하게 이어져 파주 아이파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금요일 오후3시에 세종시에서 출발한 아들내외가 6시에 파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식사를 먼저 하라고 했다. 우리는 오후 8시쯤 도착하여 통닭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아들내외는 대체휴가까지 3일간 이어져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파주에 올라온 것이다. 몇 일전에 만났지만 손녀와 아들내외를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고 늘 가족과 함께하려는 며느리와 아들이 고마웠다. 시온이가 오던 길에 잠이 들어 편히 왔다고 했다. 아들내외도 파주아이파크는 리조트에 오는 것처럼 너무 좋아했다. 아무리 잘 해준다 해도 시댁식구는 어렵게 느껴지는 며느리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족은 며느리와 손녀를 너무도 사랑한다. 며느리 또한 시댁식구를 너무 좋아한다. 서로가 배려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니 이심전심이다. 사랑이 넘쳐는 가정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나도 지금까지 가족들로부터 평생 받을 사랑을 다 받았으니 여한도 미련도 없다.
토요일 날은 병우와 함께 재인폭포가 있는 연천으로 향했다. 재인 폭포는 파주에서 1시간 10분정도 소요 되었다.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형중의 하나로 연천군의 대표적인 명승지이다. 지장봉에서 흘러내리던 계곡물이 평지가 움푹 내려 않으며 폭포를 이루게 되었다. 이곳에는 폭포의 이름과 관련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전해진다. 새로 부임한 원님이 제일 소문난 외출타기 재인을 죽이고 아름다운 그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줄타기 대회를 열어 재인을 죽이기 위해 밧줄에 칼집을 내어 폭포위의 절벽에 매어 놓고는 죽게 하여 재인이 떨어져 죽으니 재인의 아내에게 강제로 수청을 들게 하였으나 재인의 아내는 코를 물어뜯고 자결하여 절개를 지켰다는 전설이 있다. 재인폭포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코스별로 데크 길이 잘 조성되었다. 주변에 국화가 심어져 가을에는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오리라 생각되었다. 데크길 1코스와 2코스, 폭포지점에서 폭포의 색다른 모습을 음미할 수 있었다. 맑고 깨끗한 선녀탕에서 흐르는 물이 주상절리라는 절벽을 만나 폭포가 되어 장관을 이루는 폭포관람을 마치고 인근의 이조궁전으로 이동했다.
조선의 궁전을 모델로 여관 또는 야영장을 만들었다. 가족과 함께 야영하기에 넓고 조용한 장소였다.
가던 길에 운치 있는 아우라지를 구경하고 인근 맛집에서 국수를 먹고 임진강주상절리에 왔는데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수직의 주상절리가 마치 평풍을 쳐 놓은 듯하였다. 돌단풍과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임진적벽으로 불리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임진각주상절리를 구경하고 당포성을 향했다.
당포성은 당개 샛강과 임진강 본류사이에 형성된 삼각형 절벽위에 쌓은 고구려성이다. 고구려의 기와 토기와 함께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유물도 토출된 것으로 보아 당포성의 위치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 숭의전의 안내표시가 되어 있어 그곳을 향했다. 조선시대에 고려의 4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공신 16명의 제사를 지내던 고려의 종묘이다. 6.25때 소실되었으나 1973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매년 춘추재대재 및 고려문화재가 개최되고 있다.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의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가 싶다. 숭의전을 구경하고 호로고루 유적지를 향했다.
호로고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구려 유적으로 임진강 한탄강의 주상절리 절벽을 활용하여 조성된 강안 평지성이다. 5-7세기경 삼국간의 치열한 영토분쟁 속에서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로부터 방어가하기 위해서 축조하였다. 가던 길에 경순왕릉 안내가 되어 있어 그곳을 향했다.
경순왕릉은 신라 56대 왕이자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능이다. 경주에 있는 신라 왕릉과 달리 경주를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의 왕릉이다. 현재 경순왕릉에서는 매년 봄, 가을마다 춘추대제와 봉행되고 있다. 바로 옆에 경순왕 왕자들의 묘와 그 옆에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의 묘가 있었다. 최근에 만든 묘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신라의 천년사직도 한 여름밤의 꿈이 아니런가. 무덤들은 바라보니 왠지 쓸쓸함마저 감돌았다.
저녁에는 시온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가족과 더불어 집에서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다음날이 시온이 생일이어서 작은 케익을 준비하여 온 가족이 시온이 생일을 축하했다. 축하 송을 마치고 촛불을 끄는 시온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렇게 건강하고 귀엽게 자란 우리 시온이는 우리가족의 보물이고 꿈과 사랑이다. 온 가족이 뜨거운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일요일은 파주 적성면에 있는 감악산 계곡에서 조용히 피서를 하려했는데 가는 곳마다 인파가 몰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다가 어제 다녀왔던 연천의 호로고루성을 가기로 했다. 그곳은 넓은 잔디와 그늘이 있기에 피서하기가 안성맞춤이다. 내가 시온이를 안고 호로고루 꼭대기까지 올랐다. 날씨가 매우 더워 우산을 쓰고 올랐다. 인파도 제법 많았다. 성위에서 바라보니 넓은 들에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늘이 있는 잔디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였다.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왔다. 시온이도 잔디를 마음껏 뛰어놀고 가족 모두가 잔디에 않아 휴식을 취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집에 들어가 짜장과 탕슈육을 주문하여 함께 먹었다. 다음날은 애들이 정심을 먹고 오후 3시쯤에 출발하여 세종시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18일 날 12시쯤 광주를 향해 출발했다. 세종에 있는 자녀들이 세종시에 들려 달라 하였으나 우리들은 바로 광주로 향했고 오후 4시쯤에 광주에 도착했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키운 보람을 느꼈다.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이 이토록 즐겁고 의미 있고 행복한 여행임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코로나19의 모진 격랑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때로는 소통이 이루어지 않아 갈등하고 마음 아파할 때가 있다. 부자간에도 부부간에도 친구 간에도 이웃 간에도 세대, 지역, 여야 간에도 때로는 대화의 담이 막혀 답답할 때가 많다. 이럴 때일수록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역지사지’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옛날에 소와 사자가 있었다. 둘은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게 되었다. 둘은 항상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소는 사자를 위해 날마다 제일 맛있는 풀은 사자에게 대접했다. 사자는 싫었지만 사랑하는 소를 위해 참고 먹었다. 사자는 소를 위해 가장 연하고 맛있는 살코기를 소에게 대접했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소는 괴롭지만 참고 먹었다. 하지만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하였으나 결국 소와 사자는 크게 다투고 끝내 헤어지게 됩니다.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난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는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았기에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였다. 소의 세상이고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오랫동안 삶을 함께 했던 부부사이도 사소한 일 때문에 다투고 갈등하고 아파하다가 서로 헤어진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사이다 하더라도 사소한 일 때문에 다투며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대화를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종교와 정치적인 신념이 달라 대화 중에 갈등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신념 문제는 대화로서 설득하기가 어렵다. 자신에게 굳어버린 고정관념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는 대화기술이 필요하다.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국민통합을 해야 하지만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국민들은 이용하고 갈라치기하고 있음을 자주 목격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군수가 되면 그만이지 국민의 통합에는 관심이 없다. 소중한 부부사이, 친구사이가 정치, 종교의 희생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특히 이 지역은 진보적이 정서가 강한 탓인지 동창 카톡방에도 특정정당의 성향으로 도배한다. 다른 견해를 드러내면 논쟁을 촉발하게 되고 결국 갈등하다가 남는 것은 상처와 아픔뿐이다. 가까운 사이 일수로 정치적, 종교적이 이야기를 금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모두의 관심사이기에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지역갈등의 상징인 3김의 시대가 끝난 지도 오래되었지만 그분들이 뿌려놓은 유산에 여전히 매이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씁쓸하다. 나는 이지역의 친구들과 정치적인 성향이 달라 정치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피한다. 그간의 좋은 우정에 금이 갈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 종교적인 성향이 다르지만 가까이 지내는 친구 하나가 있다. 서로는 등산과 여행을 좋아하고 음악과 역사 문화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 자주 만나서 여행을 하면서 관심사를 얘기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어 정치, 종교적인 편견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환경이 다름 속에서 살아온 친구도 이웃은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고 이해의 대상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열린 마음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량을 베푸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나는 자녀에게 부부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서도 상대방이 원하는 진짜마음을 주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역지사지’란 아내의 입장에서, 친구의 입장에서, 이웃의 입장에서 먼저 배려하고 아량을 베풀고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혼밥, 혼술, 독신가구가 늘어나 대화의 기회도 끊기고 갈등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고 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