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

2022.12.12(월) 은퇴자의 촌집일기 (장학회보 인쇄 맡김,와이프 임플 란트,촌집마당 크리스마스 츄리, 승용차 수리 맡김, g-voic

촌집목련 2022. 12. 13. 05:20

2022.12.12(월)
은퇴자의 촌집일기
(장학회보 인쇄
맡김,와이프 임플
란트,촌집마당 크리스마스 츄리,
승용차 수리 맡김,
g-voice 찬양단
송별 만찬)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Wife's Day다. 장학회보 초안을 새벽 2시
37분까지 컴퓨터
워드작업을 마무리
하여 인쇄소에 이메일로 원고를 송부하고 12월 23일까지 인쇄해
달라고 주문한후
잠자리에 들었다.
벌써 4년째 장학회
업무를 맡고 있어
장학회보 편집은
누워서 떡먹기
만큼 쉽지만, 나이가 66세가 되다보니 주어진 기간안에 마무리해 300부를 인쇄하고 배부하는 것이 벅차기도 하다.
오전에 와이프의 임플란트 실밥을 제거하고 마무리
하기위해 치과에 함께 갔다.
와이프도 나이가
65세라 치아가 약해치료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자기는 젊을 때는
고르고 하얀치아를
가져서 자신감있게
살아 왔는데, 자신의 치아가 아닌 임플란트로
살아간다는 사실에
속상해 한다.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어야하는 것은
인생사의 한 과정
이라 아무리
찬란한 젊은시절이 있었다 해도 나이 드는것은 막을수는 없는 법이다.
아침 겸 점심은
장성읍 맛집인
강식당에서 빠가탕
을 먹고 싶었는데,
추운 날씨로 빠가가 잡히지 않아 부득이 메기탕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오늘도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와이프와 함께 촌집에덴에 갔다.
와이프는 교회 전도사로 은퇴하는 내년에는 어떻게 촌집생활을 할지 구상하면서 자유로운 희망에
가득한 삶을 상상
하며 들떠있다.
촌집 난방보일러를
외출로 설정해두어
동파에 대비하고,
방안의 난방기 리모콘 조절이
잘되지 않아서
서비스 센터에 연락하며 내가 직접 수선하고
바깥 수도꼭지도
보온 덮개로 싸서
겨울 추위에 대비
했다. 또한 테라스 데크 앞의 단풍
나무와 대문앞 주목나무에 반짝
반짝 빛을 내는
크리스마스 츄리도
설치하여 12월 25일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도록
하였다. 또한 와이프의 편리한 촌집 생활에 필요한 승용차 sm6 타이어도 교체하고, 문쪽과 앞뒤 밤바를 도색
하고 광택하여
새 차처럼 운행
할수 있도록 차량 정비소에 맡겨서 이번 주 금요일에 찾게하였다. 수선이 완료되는 금요일까지 K5 가스차를 렌트해서
광주로 복귀했다. 나는 승용차를 와이프에게 인계한 후 도보와버스탑승
으로 생활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오늘 저녁식사는 담양 수북면에 있는 맛집 단청
식당에서 하였다.
2012.11.23일
부터 12월 오늘
까지 11년째 내가 맡았던 g-voice
찬양 단장에서 은퇴하는 석별의
만찬이다. 오늘 식사비는 단장인
내가 지불하려고
했는데, 그 동안 고생했다면서 목사님 사모님께서
한 턱을 쏘셨다. 11년 동안 매주 금요일밤마다 다른
모임이 있어도 빠지지 않고 찬송가를 리허설해
교인들앞에서 찬양 인도를 해왔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대견하다고 생각
한다. 특히 11년×52주일
=572일 동안에
거의 결석을 하지
않고 참석했던 7명의 찬양단원
들이 자랑스럽다.
55세 이상 나이가 많은 남성 안수
집사들로 구성되
찬양인도를 해온
찬양단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하나님께서도
이들의 섬김정신을 미쁘게 여겨서 축복을 주리라 생각한다.나의 아마추어 어설푼 통기타 실력으로 찬양단을 이끌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영광의 시간으로 보람찬 세월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년부터 나는 찬양단장에서 해방 되기에 시원하지만
서운하기도 한다.
오늘 만찬 메뉴는
돼지갈비와 냉면 그리고 옹심이다.
주변 경관과 야간 조명이 화려해서
사진 촬영을 해두었다. 식사후 목사님께서 은퇴후에 살아가실 전원주택을 구경
하였다. 1층 25평, 2층 15평으로 2층은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작은예배당도
마련되어 있다.
송년의 계절 12월 중순인 이번 주간도 나의
스케줄은 가득차
있다. 내일은 교육청 후배직원
들과의 만찬, 모레는 장학회장
님과 상임이사님의
오찬, 글피는 친구들 20명 모임
만찬, 금요일밤 기도회, 토요일은
지인 2명의 자녀
결혼식  참석 등
바쁘다 바빠!
노후에는 적적한것 보다 바쁘게 살아가는것이
더 낫다고 해서 위안을 받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