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그리고 현재

2005.5.15 시민의소리 신문게재

촌집목련 2020. 9. 8. 01:01




촌집일기

2005.5.15
시민의 소리 보도내용
(김복순 기자)

그곳엔 나무가 있고 새가 있고 채소가 있고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있다.

▲ 촌집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다시피 했다.ⓒ김복순
김성수씨의 시골집은 대문이 없다. 엉성하게 세워 둔 대문은 장식일 뿐이다. 지붕엔 저절로 낀 풀색 이끼가 있다. 벽은 나무다. 나무 속엔 황토가 있다. 대문에서 저만큼 있는 집은 푸르름 속에 서 있다. 초여름이다. 낮은 봉우리 뒷산이 푸르고 앞산과 옆 들판이 푸르다.

푸르름 속에 집. 한 장의 그림이다. 우리는 와, 감탄하며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마당의 금잔디가 싱싱하다. 초여름 햇살까지 수북하게 마당으로 내린다. 김성수씨가 호수를 든다. 금잔디에 시원한 물이 뿌려진다. 금잔디는 기다렸다는 듯 물을 금방 빨아들인다.

울타리 옆 텃밭 앞 두렁에 이제 막 잎을 틔운 들깨 싹들이 소복소복 하다. 들깨싹 두렁 옆에 쑥갓, 쑥갓 옆에 부추, 부추 옆에 시금치, 상추, 알감자 등등, 밭에 있어야 할 채소들은 김성수씨 집 텃밭에 다 모여 있다. 채소들을 내려다보는 김성수씨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있다. 그 미소는 얼굴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 김성수씨 집 ⓒ김복순
나무들도 있다. 밭두렁가에 나무들이 심어져있다. 감나무, 단풍나무, 석류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 그리고 자두나무들과 키위나무까지. 더 재밌는 것은 키위나무다. 네 그루의 암 키위나무가 한 그루의 수 키위나무를 나란히 바라보며 서 있다. 나무 사이사이에 꽃나무도 있다. 백일홍, 금송화, 봉숭아, 사루비아, 다알리아......이름 모를 많은 꽃과 나무들이 가득하다. 마당에 있는 우리의 마음까지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채소가 된다.

큰방 쪽문을 열고 뒷산 봉우리까지 본 우리는 목련나무 그늘에 앉는다. 의자는 통나무다. 김성수씨가 직접 구해 썰어 만든 의자다. 나무바람이 시원하다. 김성수씨는 늘어진 포도나무 가지를 위로 올려주고 있다. 새가 자잘한 열매들이 달려 있는 포리똥나무 가지가지를 총총거리며 왔다갔다한다. 그 새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목련나무 위에서 와글와글한 울음소리가 통나무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쏟아져내린다. 우리는 깜짝 놀라 일어선다. 김성수씨가 웃으며 말한다. 청개구리들의 울음소리라고. 일행 중 한 명이 김성수씨에게 묻는다. 개구리가 나무 위에서도 웁니까?

일흔이 넘은 듯한 할머니가 골목길을 내려오면서 김성수씨 집을 바라보고 있다. 윗집의 동네 할머니다. 김성수씨가 부른다. “할머니, 저 왔어요. 어서 오세요.” 할머니가 온다. “안본께 지비가 솔고시 보고잡았는디.......글고 여그 길을 왔다갔다 함시롱 본께 쩌그 꼬치나무가 비가 안온께 자올자올 하고 있어서 꺽쩡이 디았소. 물은 주어야쓰겄는디 쥔양반 없는 집에 맘대로 들락거릴수도 읎고 혀서 언지나 온다냐 했드만 인자 왔소. 언능 꼬치 물부터 줏쇼.” 할머니가 김성수씨 집 밭에 심어진 시들시들한 고추나무를 염려하는 말이다.


▲ 김성수씨 집 텃밭에 자라나는 채소 ⓒ김복순
이 번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울타리 옆에 서 있다. 김성수씨가 포도나무를 손질하다 할머니 손을 잡고 목련나무 그늘로 온다. 두 할머니와 김성수씨는 모자사이가 된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김성수씨가 말하며 자신이 할머니들과 함께 예전에 찍은 사진을 꺼낸다. “나는 희그니 늙어서 꼴뵈기 싫은줄 알았는디 영판 이삐게 나왔네 그fi.” 지팡이 짚은 할머니는 김성수씨가 보여준 사진을 보며 좋아한다. “아휴, 할머님이 원래 예쁘세요” 김성수씨가 답변하자 할머니들이 대문 곁에 봉실봉실 핀 불두화처럼 웃는다.

그 사이에도 김성수씨 집에서는 새가 날고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와글와글 쏟아지고 초여름 햇빛이 내리고 꽃들이 피어나고 채소들이 잘 자라고 있다. 사방이 자연이다. 지금 이 시간, 김성수씨도 자연이다.


‘그’가 꿈꾸는 집. 그리고 자연을 나누는 집
[취재 뒤안길]김성수씨 집에 다녀와서


김복순 기자 park@siminsori.com




▲ 김성수씨 촌집.ⓒ김복순
어느날부터 그는 자연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3년전 작은마을에 버려진 폐가를 구했다. 그 집은 서민의 3칸짜리 일자형인데 10년간 비어 있었다. 마을엔 젊은 사람들은 없다. 노인들뿐이고 거기다가 거의 한 집에 할아버지 아니면 할머니 혼자 산다. 외롭고 쓸쓸한 마을이었다.

그는 빈집을 수리하고 가꾸었다. 손수 황토 흙을 반죽하여 벽에 바르고 그 위에 나무조각을 댔다. 나무조각은 학교에서 뜯어내다 버린 교실바닥 마룻장이다. 방바닥도 마루장으로 깔았다. 그가 집을 수리하면서 든 비용은 없다. 버려진 것들, 쓸모 없는 것들을 주어다 먼지를 털고 윤기를 내어 새롭게 사용한 것이다. 빈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큰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큰돈이라면 벽에 발라진 한 트럭의 황토뿐이다.

마당에 심어진 과일나무나 채소도 마찬가지다. 동네 할머니가 한 그루씩 주었거나 돈을 주고 샀다면, 2천원에서 3천원정도이다. 시간도 무리하게 들지 않았다. 틈이 날 때 조금씩 황토를 바르고 밭을 일구어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렸다. 그러기를 3년. 이제는 사람이 와서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의 모습이 되었다.

그는 3년에 걸쳐 직접 수리하고 가꾼 소박한 촌집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안보면 보고 싶고 궁금했다. 채소 씨앗들은 텄을까? 튼 씨앗과 맺은 열매는 얼마나 자랐을까? 그러다 주말이 되면 광주에서 어김없이 촌집으로 달려가고 그 곳에서 쑥쑥 자라는 채소와 톡톡 여물어가는 과일열매를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고 이뻤다.

우리 일행과 함께 간 그 날도 그는 잔디 속의 풀을 뽑고 상추를 뜯고 포도나무가지를 위로 올리고 매실 열매가 잘 영글고 있는지 살폈다. 복잡한 도회를 벗어나 자신의 촌집에 와서야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 그는 자연과 잘 어울렸다.

그는 말했다. 자연을 알면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그는 자신의 생명과 남의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고 끊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생명이 가볍게 여겨지면 땅에 씨앗을 뿌리고 그 쏙쏙 나온 싹들이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그러면 그 생명들이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될 거라고.”

촌집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편안함을 얻는 그. 그는 자신이 받은 자연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집을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했다. 누구든지 촌집에 와서 자라는 나무도 보고 채소도 보고 새소리도 들으면서 직접 땅을 파서 씨앗도 뿌려보라고.

그래서 대문이 없었다. 부엌문도 창고문도 방문도 열어두었다. 그런데 집을 다녀간 사람들은 흔적을 남겼다. 방구들이 꺼지고 대나무 돗자리가 불에 그을리기도 했다. 그 후로 그는 열쇠관리에 조금 신경을 쓰게 되었다. 김성수씨는 그게 서운했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에게 자연을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 누구든 언제든 그가 사랑하고 삶을 꿈꾸는 자신의 촌집에서 자연의 평화를 얻기 바라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촌집에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는 일지를 보면 안다. 일지에는 그가 처음 집을 샀을 당시 모습과 그 집을 수리하는 과정의 모습 그리고 씨앗을 뿌려 가꾸면서 느꼈던 행복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한 부분을 옮긴다.

“.....부슬비가 내렸다. 호박 넝쿨이 덮고 있는 외양간 옆 텃밭을 쇠스랑으로 부드럽게 팠다. 고랑에 퇴비를 뿌렸다. 3000원에 구입한 무 씨앗을 뿌렸다. 무싹은 2일만에 튼다고 동네 할머니들이 말했다. 기대감에 마음이 벌서부터 들떴다. 엊그제 심었던 배추와 쑥갓은 벌써 새싹이 나오고 옮겨 심은 부추도 파릇파릇 생기를 띠었다. 이것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니 천하를 얻은 기분이다......”
-[외양간 텃밭에 무우 씨앗을 뿌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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